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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膵臟癌·pancreas cancer) 하면 '매우 무섭다'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췌장암은 암세포가 처음 생긴 부위의 주변 조직을 조금씩 파고들기 시작한 1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50%에 달하지만,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은 4~8개월에 불과하다. 미처 손쓸 시간도 없이 당하고 마는 게 췌장암이다.
췌장암은 1년에 새로 진단받은 환자가 8872명(2021년 기준)으로 전체 암 중에서 8위이지만, 사망 원인으론 5위에 올라 있다. 5년 생존율은 전체 암이 72.1%이지만 췌장암은 15.9%로 국내 10대 암 중에서 예후가 가장 나쁘다. 그래서 췌장암이 발견됐는데 2~3개월 만에 숨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된다.
췌장암은 일반적으로 췌장에서 발생하는 암을 말한다. 췌장은 복부 깊숙이 위장 뒤에 15㎝ 정도로 길쭉하게 위치하며 머리 부분은 십이지장과 맞닿아 있으며 꼬리 부분은 좌측 비장과 맞닿아 있다. 이 때문에 통증 증상이 있어도 위나 장의 이상이 아닐까 주로 의심하게 된다.
췌장 종양 발생 시 증상은
가로로 길게 놓여 있는 췌장은 종양 위치와 주위 장기로의 전이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췌장 머리 쪽에 암이 생겼을 경우 간에서 담즙이 내려오는 길을 막기 때문에 초기에 황달이 생길 수 있고, 췌장의 가운데나 꼬리 부분에 암이 생길 경우에는 복부 불편감, 소화불량, 체중 감소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췌장 가운데나 꼬리 쪽에 발생한 암은 머리 쪽에 발생한 암에 비해서 뚜렷한 특이 증상이 없어 늦게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이홍식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은 초기에 별다른 증상이 없고 다른 소화기계 질환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 조기 발견이 어렵다"며 "방치할 경우 암세포가 전이돼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어 조기 발견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췌장은 간과 함께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초기 자각 증상이 없어 이미 상당히 진행됐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러다 보니 중장년이 되고 췌장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나이가 되면 '내 췌장은 괜찮은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췌장암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해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췌장암의 조기 발견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사실 조기 발견이 가능하면 대부분 수술로 완치할 수 있다. 5년 생존율이 낮은 것도 따지고 보면 췌장암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하나다 게이지 JA 오노미치종합병원 부원장(의학박사·전 히로시마의대 교수)이 2021년 췌장암 조기 진단 프로젝트 '오노미치(尾道) 방식'을 도입해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을 약 20%(일본 평균 5년 생존율은 8.5%)까지 끌어올렸다"고 보도했다. 오노미치 방식은 병원과 진료소가 협력해 췌장암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물망식으로 복부초음파 등 화상검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의심스러운 징후가 보이면 췌장을 자세히 검사해 조기 발견 및 치료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나다 부원장은 "췌장병은 생활습관과 관련이 깊다.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이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췌장암의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당뇨병 등 생활습관병이 있으면 췌장암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췌장을 지키려면 생활습관 개선이 그 첫걸음이 된다"고 설명했다. 오노미치 방식은 히로시마현 전역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50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이렇다 할 췌장암의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췌장은 '외분비 기능'과 '내분비 기능'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외분비 기능은 췌장액이라는 소화액을 만들어 장내로 내보내는 기능을 일컫는 것으로, 췌장액에는 당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 단백질을 분해하는 트립신, 지방을 분해하는 리파아제 등의 소화효소가 들어 있다. 췌장액은 하루에 약 1ℓ 분비된다.
내분비 기능은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으로 보내는 기능을 말한다.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호르몬으로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 그리고 인슐린과 글루카곤 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소마토스타틴 등이 있다.
췌장암의 적은 술
술을 많이 마시면 췌장액 분비가 하루에 2ℓ 정도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췌장액이 흐르는 췌장관 출구가 과음으로 부어 버리면 췌장액의 흐름이 막히고 그 영향으로 염증이 일어나 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알코올에 의한 급성췌장염이다. 이 밖에 담석이 출구를 막아서 발생하는 급성췌장염도 있다. 기름진 식사를 해도 췌장액 분비가 촉진된다. 술을 마시면서 불고기, 고기튀김, 치킨 등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급성췌장염의 위험이 점점 커지게 된다.
급성췌장염은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이는 요로결석, 심근경색과 맞먹는 3대 격통(激痛)으로 꼽힌다. 하지만 췌장이라는 장기가 몸 안쪽에 숨어 있어 급성췌장염의 통증이 췌장에서 기인한다고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급성췌장염 통증을 주로 위나 장의 통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허리 통증이라고 착각해 정형외과를 찾거나, 요로결석이 아닐까 생각해 비뇨기과나 신장내과를 찾기도 한다.
췌장염 치료는 기본적으로 입원이 필요하며 금식을 해 췌장액 분비를 멈추고 췌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담석이 원인이라면 담석을 제거한다. 남성은 알코올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치료 후에도 금주가 필요하다. 하나다 부원장은 "다시 술을 마시고 급성췌장염을 반복하다 보면 만성췌장염으로 이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만성췌장염은 급성췌장염과 달리 심한 통증보다 등이나 복부에 둔하고 묵직한 둔통(鈍痛)이 가끔 일어난다. 만성췌장염은 대다수 원인이 과음으로 알코올에 의해 췌장액 분비량이 크게 늘어 염증이 생긴 것이다. 또한 췌장 속에 결석이 생기는 것 역시 췌장액을 오래 머물게 해 염증을 유발한다. 만성적으로 췌장액이 체류하게 되면 췌장조직이 '섬유화(纖維化)'돼 딱딱해지고 두꺼워져 췌장 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만성췌장염으로 췌장 기능이 쇠약해져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으면 당이 혈액 속에 넘치면서 혈당이 높아져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이와 함께 만성췌장염은 췌장암의 주요 위험인자다. 만성췌장염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췌장암에 걸릴 위험이 10배 이상 된다고 알려져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급성췌장염에 걸리고 이후에도 음주를 끊지 못한 채 만성췌장염으로 이행하다 결국 췌장암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50세 넘어 당뇨 생겼다면 주의
췌장은 혈액 내 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분비하기 때문에 당뇨병과 췌장암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50세 이상이 돼 갑자기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이 발병한 후 2년 이내에 췌장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발병한 지 1년 미만인 사람이 췌장암에 걸릴 위험은 당뇨병이 아닌 사람에 비해 5.4배로 매우 높다.
하나다 부원장은 "치료를 하던 중 당뇨병이 갑자기 악화된 사람에게서 췌장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당뇨병 수치가 갑자기 악화되면 췌장암을 의심할 필요가 있으며, 진료 현장에서도 가끔 마주치게 된다"고 밝혔다.
췌장암뿐만 아니라 만성췌장염과 같은 췌장 질환으로도 당뇨병이 악화될 수 있다. 평소 생활습관이 원인인 당뇨병과 췌장병이 원인이 된 당뇨병은 치료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를 통해 그 원인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흡연이나 비만도 췌장암의 위험인자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췌장암 위험은 약 1.8배다. 금연하면 위험은 서서히 낮아지지만, 비흡연자와 같은 수준까지 내려가려면 약 20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다 부원장은 "서양은 BMI 30 이상일 경우 췌장암 위험이 1.31배이며 한국과 일본은 비만 남성의 췌장암 위험이 1.7배로 높아진다. 특히 20대 비만 남성은 3.5배까지 높아져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생활습관부터 고쳐야
식사가 불규칙하거나 운동이 부족하면 비만의 원인이 된다. 또한 당뇨병이나 이상지질혈증 등 생활습관병이 있으면 역시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췌장암은 가족력과 관련이 높다. 가족 중 췌장암 환자가 있으면 췌장암 위험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부모, 형제자매, 자녀 중 췌장암 환자가 1명이면 위험이 4.5배, 2명이면 6.4배, 3명 이상이면 32배로 뛴다(Cancer Res. 2004; 64(7): 2634-8, 일본 췌장암 진료 가이드라인 2022년판). 일반적으로 위험이 5배 이상 되는 '2명 이상 있는 가계'를 '가족성 췌장암 가계'라고 부른다. 췌장암 전체 환자 중 5~10%가 '가족성 췌장암'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가계에 어떤 검사를 어느 간격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일본은 국립암연구센터와 췌장학회 공동으로 가족성 췌장암 가계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6개월에 1회의 혈액 검사와 화상(초음파) 검사에 의한 관찰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하나다 부원장은 "발병 위험이 5배를 넘으면 주의가 요구된다"며 "예를 들어 부모 중 한 분이 췌장암에 걸린 것만으로 자신을 반드시 고위험군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가능하면 종합건강검진 등을 이용하면서 1년에 1회, 복부초음파 검사나 혈액검사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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