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부활 이끈 이은철 부회장 인터뷰
파리올림픽 金·銀 3개씩
韓 사격, 역대 최고 성적
대회마다 실전같은 선발전
양궁 벤치마킹하며 혁신
1992년 金 따고 실리콘밸리행
빅데이터 기업경험 사격에 적용
![이은철 대한사격연맹 실무부회장. [한주형 기자]](https://wimg.mk.co.kr/news/cms/202408/13/news-p.v1.20240812.0b696a292ddb450795663e0c4d9a4ed3_P1.jpg) 한국 사격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대반전을 이뤄냈다. 역대 가장 많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를 따고 세대교체까지 성공하며 수십년간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한국 양궁의 뒤를 이어갈 발판을 마련했다.
2020 도쿄 대회 무관에 그쳤던 한국 사격의 부활을 이끈 주인공은 ‘사격계의 히딩크’ 이은철 대한사격연맹 실무부회장이다. 지난해 경기력향상위원장으로 이번 대회 출전 선수들을 선발했던 그는 한국 사격에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한 선수 선발 시스템을 구축해 반효진(17), 양지인(21), 오예진(19), 김예지(32) 등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해냈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만난 이 부회장은 “한국 사격의 첫 금메달이 나왔던 1992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2020 도쿄 대회까지 금메달을 따낸 선수들은 4명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각기 다른 종목의 세 선수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며 “실력 있는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변화를 가져간 뒤 곧바로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 사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확실히 알게 된 올림픽이었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이전과 가장 달라진 건 결선 시스템의 도입이다. 2020 도쿄 대회에서 본선까지는 좋은 성적을 내지만 결선에서 무너지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게 된 이 부회장은 결선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했다. 여기에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과 같은 국제 대회의 경우 양궁처럼 따로 출전 선수 선발전을 진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지도자 선발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름값이 아닌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뽑기 위해 이 부회장은 ‘모범적인 지도자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내용이 담긴 무기명 설문 조사를 직접 진행했다. 이때 얻은 데이터는 이번 대회 최고의 성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지도자 선발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한 뒤 기존의 선수 선발 시스템으로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동안의 데이터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가 결선 시스템 도입, 국제 대회별 선수 선발전 진행 등”이라며 “사격계 대부분이 새로운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국 사격의 발전을 위해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변화를 가져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격 선수에서 은퇴한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정보기술(IT) 엔지니어이자 빅데이터 전문가로 현장을 누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격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동안 빅데이터를 공부했던 것 같다. 선수들의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발전시켜야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앞으로 내게 남은 숙제 중 하나는 선수들의 훈련 과정 등을 모두 연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기록이 남는 만큼 국가대표, 소속팀 등 지도자들이 해당 선수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투명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시스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보완해나가겠다는 생각도 전했다. 이 부회장은 “무한 경쟁을 기본으로 한 현재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발전시키려고 한다.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 출전권을 따오는 선수들에 대한 가산점 제도”라며 “특정 대회 출전권을 따온 선수가 해당 대회에 나가게 된다면 한국 사격의 발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선에서 미세하게라도 가산점을 받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한사격연맹의 모든 구성원이 대한양궁협회처럼 한 마음이 돼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한국 사격의 미래는 앞으로 3년 안에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양궁의 뒤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는 경쟁 분위기와 확실한 보상 체계까지 만들어져야 한다”며 “좋은 회장님을 모셔오는 것도 대한사격연맹이 해야하는 일이다. 회장님부터 막내 사원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 움직이면 한국 사격도 한국 양궁처럼 세계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사격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성적에 따른 확실한 보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고 해서 선수들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가장 중요한 건 상금이다. 선수들이 벌 수 있는 상금이 늘어나면 스스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력향상위원장으로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이 부회장은 하나가 돼 움직여준 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9명의 위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부터 실시되고 있는 새로운 선수 선발 시스템에 대한 사격인들의 공감도 위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설명한 결과물”이라며 “차기 경기력향상위원회가 한국 사격이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무부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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