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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사소한 일상을 특별하지 않게 스케치한 그의 글에는 사케스틱(sarcastic)한 유머 코드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키가 정색하며 “당신 웃으라고 쓴 글이 아니야. 내 글은 예능이 아닌 다큐”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재미를 느낍니다.
며칠 전 서점에서 <이윽고 슬픈 외국어>란 하루키 에세이를 무심코 집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목적성 소비라기보다는 충동구매에 가깝습니다. 그의 글 중에 ‘문화적 화전농업’이란 표현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최신 유행을 따라 하는 모습을 ‘최첨단 파도타기 경쟁’이라면서 “문화적 화전농업이다. 모두가 달려들어서 밭 하나를 다 태운 뒤에 다른 밭으로 옮겨간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코로나19 기간 폭풍 성장했던 한국 골프가 전방위로 휘청이고 있습니다. MZ세대는 ‘문화적 화전농업’의 하나로 골프를 즐겼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김원섭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골프의 뿌리는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그 속에 수많은 스토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김 회장은 그 스토리들을 발굴하고 대중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에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역사에 무심합니다. 반면 역사가 짧은 미국은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레거시(Legacy·유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물론 한국 골프도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 고가의 옷을 입고, 유명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과시’의 수단이 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 LA컨트리클럽은 최고 부촌 베벌리힐스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고 있지만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골프장 내에서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keep a low profile) 운영하는 정책 때문입니다.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이 욕먹지 않고 100년 넘게 지속되려면 이 정도의 품격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대중 골프장은 정반대입니다. 지역 주민 친화적입니다. 미국 상당수 골프장이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동네 주민들이 클럽하우스에서 브런치를 먹고, 결혼식을 올리며,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이 일상입니다.
한국 골프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정책적 뒷받침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골프를 사치 향락업으로 보고 룸살롱, 도박장처럼 규제한 유신시대의 징벌적 세금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골프를 ‘산업’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 골프산업이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낯선 얘기도 아닙니다. 테일러메이드, 타이틀리스트 등 세계 유명 골프 브랜드를 이미 한국 자본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골프를 ‘귀족 스포츠다, 부자놀음이다’라며 갈라치기를 할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 럭셔리 산업은 수출 증대를 위한 17세기 국가 브랜드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콜베르가 럭셔리 상품 수출에 국운을 걸며 유럽 각지의 숙련공을 모아 승부수를 띄우지 않았다면 지금 루이 비통이나 에르메스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한국 골프가 K-푸드, K-뷰티, K-팝처럼 ‘K-골프’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장, 유럽 시장, 동남아 시장을 점령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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