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가 된 변호사 김원영 씨
유전질환으로 지체장애 1급
인권변호사·작가로 활동하다
‘몸짓의 탁월성’으로 평가받는
무용수 변신해 공연창작까지
“휠체어서 내려오니 해방감
장애인 법률·무용교육 목표”
 유전성 골격 질환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탔다. 그가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인식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가슴은 툭 튀어나왔고, 상체에 비해 하체는 짧았으며, 얼굴은 상대적으로 컸다.
차별과 멸시를 피하기 위해 아이는 움직임을 줄였으며, 몸을 최대한 숨기고 잘 통제하는 기술을 익혔다. 휠체어를 타는 몸을 철저히 감춘 채, 언어와 규범의 세계에서 교양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어른이 되고자 했다. 서울대에 진학한 그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작가가 되어 글을 썼다.
매일경제가 만난 ‘변호사 출신 무용수’ 김원영(42)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법인을 거쳐 현재 무용수 겸 공연 창작자로 활동한다. “변호사는 추상적인 언어로 현실의 갈등 속으로 뛰어들어야 해요. 반면 무용수는 직관적인 몸짓으로 이상적이고 흥미로운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죠.” 갈등 속에서 시장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하는 변호사보다, 몸짓의 탁월성으로 평가받는 무용수가 적성에 맞는다고 그는 말한다.
2013년부터 무대에 오른 그가 스스로를 무용수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무대에서 보여주는 제 몸짓을 춤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어요.” 연출가가 그에게 휠체어에서 내려와 표현해 보라 제안했을 때, 그는 주저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사람들 앞에서 바닥을 기어가는 것은 금기시돼요. 바닥이 더럽든 깨끗하든 간에요. 마치 나체로 관객 앞에 서는 것처럼 느껴질 듯했죠.”
그가 본격적으로 무용계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016년 우연히 참여한 연극 워크숍에서의 경험이다. “함께 팔을 잡고 움직이던 비장애인 무용수가 갑자기 바닥에 누웠어요. 그 순간 창피함도 잊은 채 휠체어를 버리고 내려갔죠.” 이때 그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휠체어를 버리고 바닥을 구르며 춤을 췄다. “사실 저는 바닥에서 움직이는 게 더 편해요. 하체에 비해 상체 근육이 발달해 어릴 적부터 줄곧 집에선 그렇게 놀았거든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상황에 몰입하니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어요.”
이후 2019년 공연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서 그는 휠체어 없이 무대를 독무로 채웠다. 이 작품으로 202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인정투쟁: 예술가 편’(2019), ‘무용수-되기’(2020)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최근 출간한 저서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에서 그는 장애가 있는 몸과 비장애인의 몸이 평등한지를 자문자답한다. “장애인의 권리와 존엄을 말하면서도 정작 장애가 있는 몸을 추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못했어요. 이런 내가 춤을 추고 또 춤에 대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죠.”
그는 평등이란 단순히 사회 구성원들이 비슷해지고 비슷하게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지극히 차별화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그 차이를 인정받을 때 진정한 평등이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제가 발레리노처럼 공중에 뛰어오를 순 없지만, 바닥에서 움직이는 데 익숙한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작도 있죠. 이 동작만이 관객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상도 있을 테고요.” 이어 그는 “우리는 모두 ‘힘’을 지녔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며 “각자의 능력은 다르지만 상대의 힘을 존중하고 신뢰할 때 우리 사회는 온전한 평등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장애인을 위한 권리의식·움직임 교육이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규범적으로 사회에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는 인식, 그리고 자신의 몸에 대한 진정한 긍정이 모두 필요해요. 변호사 출신 무용수만이 할 수 있는 교육 아닐까요. 직업으로서의 변호사는 그만뒀지만 장애인을 위한 법률 전문가로서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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