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하를란, 동메달로 887일째 전쟁 중인 조국에 올림픽 첫 선물
“러시아에 희생돼 파리에 오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승리”
 “정말, 정말로, 너무나 소중해요. 그 사태 이후 우리가 딴 첫 번째 메달이잖아요. 금메달이랑 같은 거예요. 아니, 금메달보다도 값진 것 같아요.”
올하 하를란 우크라이나 펜싱 선수의 승리로 동메달이 확정된 순간, 그는 머리를 감싸 쥐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는 그의 손에는 노랑, 파랑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색이다.
하를란은 지난 7월 30일(한국 시간)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의 최세빈 선수를 15 대 14로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그에게 동메달은 단순한 ‘세계 3위’ 그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처음 치른 올림픽에서 처음 딴 메달이다.
경기장에서 마지막 15번째 점수를 올린 하를란이 오열하자 현장에 있던 우크라이나 취재진도 함께 울었다.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는 일어나 기쁨과 뒤섞인 표정으로 “이것은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라고 했다.
하를란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메달은 나의 조국과 조국을 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러시아 때문에 목숨을 잃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 선수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로 온 선수들에게는 참 좋은 출발로 느껴질 거다.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메달이 금메달과 같다. 무슨 메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를란은 경기 직후 마스크와 피스트에 입 맞춘 순간 “이건 내가 따낸 5번째 메달이다. 그저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감사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메달이 조국에 기쁨,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하를란은 작년 7월 펜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 선수와 악수를 거부해 실격 처리되면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하를란은 개인전 64강전에서 러시아 선수인 안나 스미르노바를 15 대 7로 이겼다. 그러나 경기 종료 후 마주 선 스미르노바가 다가가 악수하려 했으나 하를란은 자신의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뒀다. 끝내 악수하지 않고 경기장을 내려왔다.
펜싱 경기 규칙에 따르면 승패가 결정된 뒤 선수들이 악수해야 경기가 끝난다. 스미르노바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50분 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항의했다. 끝까지 악수를 거부한 하를란은 결국 실격 처리됐다.
하를란은 이후 자신의 SNS에 “누구에게도 평화를 강요할 수 없다. 특히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인에게는 더욱 평화도, 악수도 강요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는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이 실격으로 하를란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지만,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특별초청장’을 보내 이번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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