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된 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3선 당선을 공식화하자 이에 분노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자 중남미 좌파 포퓰리즘의 대부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부숴진 채 방치돼 있다. [사진=AFP연합]](https://wimg.mk.co.kr/news/cms/202408/01/rcv.YNA.20240801.PAF20240801454301055_P1.jpg) “베네수엘라인들은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21세기 사회주의’ 거짓말에 지쳤다. 오늘 같은 전국적인 민중봉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의 후폭풍이 거세다. 노골적인 선거 부정 의혹으로 점철된 탓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득표율 51%로 3선 당선을 공식화했다. 그는 2013년, 2018년 두 번의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논란 속에 집권한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선거 조작에 분노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한때 “가난한 자를 위해 신이 보내준 사람”이라 불렀던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부수며 전국적인 반정부시위에 나섰다.
‘실패한 국가’의 대명사가 된 베네수엘라를 보면 “포퓰리즘에 놀아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 수 있다. 적어도 마두로 정권 치하인 2013년 이후 투표권을 얻은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묻긴 어려워 보인다. 이미 마두로 정권은 군대, 의회, 사법부, 언론, 국영기업 등을 전부 장악해 견고한 독재 체제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마두로는 2013년 집권 이래 대중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인기 없는 인기영합주의자’란 평가도 받았다.
인기 없는 마두로의 장기독재를 가능케 한 장본인이 중남미 좌파 포퓰리즘의 대부 차베스다. 차베스는 카리스마와 대중 선동 능력으로 1999년 정권을 잡은 뒤 서민층 무상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와중에 단계적으로 군대, 의회, 사법부, 언론, 국영기업, 노조, 시민사회를 장악해 나갔다.
베네수엘라 경제와 산업 구조는 망가졌지만 차베스는 2012년 치른 대선에서도 지지율 56%로 압도하며 실정에도 대중들의 인기를 놓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공짜 휘발유’였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과거 30년간 전국 주유소 휘발유 최저가격을 리터(ℓ) 당 1센트 미만의 ‘사실상 공짜’로 유지하기 위해 연료 보조금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국가재정 파탄을 이유로 지난 2020년 6월부터 ‘30년 공짜 휘발유 정책’을 폐기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저지른 최대 실수는 차베스를 제때 견제하고 손절하지 못한 점이다. 1992년 차베스가 50년간 안정된 양당제 민주주의를 뒤엎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베네수엘라인들은 포퓰리즘 정책에 열광하며 그를 권력의 중심에 앉혔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단기 인기에 부합하기 위해 국가의 장기적 발전 역량을 좀먹는 걸 넘어 독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에리카 프란츠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는 2018년 저서 ‘권위주의’에서 2000~2010년 사이 탄생한 독재정권의 75%가 민주주의 체제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며 ‘개인 독재’를 펼치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에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 ‘21세기 독재자’의 공통점은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은 세상을 ‘선한 대중’과 ‘부패한 기득권층’의 이분법으로 본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기득권층으로부터 소외당한 ‘국민의 뜻’을 자신만이 유일하게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라 주장하며 반대파를 ‘국민의 적’으로 규정해 숙청하려 든다. ‘국민의 적’ 숙청이 끝나면 남겨진 대중은 포퓰리즘 정권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선전도구로 이용 당한다.
차베스에 열광하던 베네수엘라 빈곤층마저도 실정에 못 이겨 차베스의 동상을 부수기까지 25년이 걸렸다. 그새 대중의 인기를 구하던 포퓰리즘 정권은 대중을 탄압하는 독재 정권으로 변신을 마쳤다.
요즘 한국 정치도 내편은 ‘절대선’으로 상대편은 ‘절대악’으로 보는 진영논리에 매몰돼 있다. 기성 정치인들은 입으로만 ‘민생’을 외치며 정쟁을 일삼는 동안 소외된 시민들은 포퓰리즘 야심가가 약속한 당장의 빵과 서커스에 유혹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25년 뒤 자녀에게 물려줄 나라가 ‘제 2의 베네수엘라’가 되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서민’을 위해 ‘국민의 적’을 심판하겠다고 떠드는 그 정치인이 권력욕을 채우려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포퓰리즘의 동상’은 25년 뒤엔 부술 수도 없는 ‘독재의 성상(聖像)’이 될지도 모른다.
안갑성 글로벌경제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